이 문제의 Last Mile은, 점자로 옮겨진 교재가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다는 점과 그 정보를 시각장애 학생이 편리하게 검색하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공부할 수 있는 문제집이 적다는 시각장애 학생들의 말에서 시작해 그 원인을 분석하다가 찾게 되었죠. 이제 점자로 된 교재 정보는 '에듀모아' 사이트에서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습니다. 교재를 구하기 어려워 공부하기가 어려웠던 시각장애 학생들께, 학생의 교재를 구하기 위해 애쓰셨던 분들께, 또 이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께 이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 행복나눔재단 김영 매니저 -
용어의 사용
목차
공부할 점자 문제집이 없다
출처: 스브스뉴스 (2019.04.10)
학교에서 받은 빳빳한 새 문제집을 만지고 책장을 넘겨보는 일. 어쩌면 새 학기를 시작하는 학생들에게는 너무 평범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이다. 그러나 점자를 사용해 공부하는 시각장애 학생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시각장애 학생들이 공부할 때에는 점자로 번역된(이하 ‘점역’) 문제집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점역 문제집을 제 때 구하는 게 어렵다. 학교 수업 진도보다 늦게 점역되거나 부족한 점역 문제집은 누누이 제기되어 온 문제였다.
행복나눔재단 김영 매니저는 시각장애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줄일 수 있는 사업모델을 고민하고 있었다. 당시 시각장애 학생들 9명*을 정기적으로 인터뷰 하며 구체적인 어려움을 파악하던 중이었다. 점역 교재에 대한 문제는 인터뷰 중 자주 언급되었다.
“문제집이 매년 많이 업데이트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요즘 애들이 많이 쓰는 자료가 없으면 옛날 걸로 하게 되는거죠. 있을 확률은 10~20%?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문제집은 정말 꼭 필요해요. 그러니까 저 같은 경우에는 프린터가 있어 다 해줄 수 있지만 어떤 엄마 같은 경우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런 분들은 점자책이 없는 거죠.”
점역 문제집은 원하는 때, 원하는 종류로 받기 힘들다. 실제로 시각장애 학생들이 이용 가능한 참고서나 문제집 수는 매우 적었다. 더 많은 문제집을 공부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여러 종류의 문제집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비시각장애 학생들에 비하면 턱없이 불리한 환경이었다.
“문제집이 많이 늦게 와요. 학기 시작하고 1~2달… 그 때까지 그냥 교과서만 읽었어요”
“평가 문제집도 조금 빨리 빨리 나올 필요가 있어요. 지금 나오는 거 보면 한 3~4월 쯤… 저희 중간고사 범위가 다 나가고, 조금씩 점역되는데 저희가 이번에 기말고사를 빨리 봐서 6월에 했는데 그 때까지 안나왔거든요. 근데 저는 모든 문제집은 3월 전에, 늦어도 중간고사 전에는 나와야되지 않을까…“
*행복나눔재단 시각장애 학생 참여그룹: 학습능력과 의지가 있으며, 읽고 쓸 때 점자를 사용하는 시각장애 학생들로, 모두 2006년생이며 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더 자세히 보기]
점자 문제집을 구하기 어려운 이유
비시각장애 학생들은 수많은 문제집의 난이도나 구성, 분량 등을 비교하며 본인에게 가장 맞는 문제집을 고른다.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에서 문제집을 지정해 주면 해당 문제집을 구매하기도 하고, 원하는 교재를 온라인에서 최신본으로 바로 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시각장애 학생도 원하는 문제집을 바로 점역해서 구할 수 있으면 가장 좋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어렵다.
문제집을 구하기 어려운 이유 1: 점역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문제집을 구하기 어려운 이유 2: 점역의 신청 수량이 제한되어 있다.
그러면 일단 누군가 신청해 놓은 점역 문제집을 구할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김영 매니저는 지속적인 인터뷰를 통해 문제를 구조화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던 중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올해 새롭게 나온 문제집을 더 빠르게, 더 많이 점역하는 게 어렵다면, ‘작년 문제집을 잘 사용하도록’ 지원하면 어떨까? 시각장애 학생들로부터 ‘예전에 점역된 문제집을 찾아보고 싶어도 찾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은 터였다.
(개정 등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교육과정은 매년 크게 변하지 않는다. 물론 당해년도 책을 보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전에 점역된 책으로 공부하는 것도 아쉬운대로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점역된 문제집은 비록 늦게 완성되고 그 수량이 적긴 하지만 매년 각 기관에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신청했던 예전 점역 문제집을 구할 수만 있으면 급한대로 일단 공부를 할 수는 있다.
물론 학생들도 그 동안 점역된 문제집이 어딘가에 있다는 건 알고 있으며 활용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 또한 쉽지 않다. 어디에서 어떤 문제집을 점역했는지 알 수 없고, 설령 알게 된다 한들 찾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예전에 점역된 문제집을 찾기 어려워 활용할 수도 없는 것이다.
“검색해서 안 나오면, 좀 더 찾아보는데 이걸 하나씩 일일이 다 볼 순 없기 때문에... 검색해서 보통 나오니까, 안나오면 그냥 없는 걸로…”
“어떤 교재가 어느 기관에 있는지 몰라 기관마다 일일이 전화를 하고 있어요. ‘알아보고 연락주겠다’는 경우 답변 받기까지도 1~2일 정도 걸리죠.”
[Last Mile] 문제는 흩어져 있는 정보와 사실상 이용이 어려운 검색환경
시각장애가 없는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수학 문제집을 찾는다고 생각해 보자. 바로 인터넷 포털창을 켜고 검색창에 ‘중2 수학 문제집’이라고 입력한다. 다양한 출판사 문제집들이 검색결과로 나온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추천 받은 책을 고르거나, 출판사별 문제집을 찾아보고, 미리보기 기능으로 목차 등을 비교하면서 원하는 책을 고른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5분 정도.
그러나 시각장애 학생들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쉽지 않다. 원하는 문제집이 점역되어 있는지, 있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알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참여그룹 학생 9명 중 직접 문제집 정보를 찾은 경험이 있는 학생은 3명에 불과했다. 그 조차도 하나의 기관에서만 찾아 본 게 전부였다.
즉, 이미 ‘국립특수교육원 및 복지관을 통한 점역’이라는 제도를 활용해 매년 많은 문제집들이 점역되어 어딘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활용되지 못하는 것. 애써 만들어진 자료들이 ‘정보의 취합과 검색환경’이라는 Last Mile*이 존재하고 있는 셈이었다. 결국 흩어져 있는 정보를 모아둘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정보들이 시각장애 학생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한 곳에 모여있다면, 시각장애 학생들이 문제집을 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게 분명했다.
사회문제의 Last Mile*
점역 문제집 정보를 모으고 검색이 잘 되게 제공하자!
Last Mile 개선점 1: 정보를 모으자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흩어져 있는 정보를 모으는 것이었다. 국내 점역 문제집 중 약 70%는 특수교육원에서 제작된다. 이 정보는 특수교육원의 ‘에듀에이블’이라는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다. 문제는 개별 복지관에서 제작한 약 30%의 문제집이다. 전국 20여 개 시각장애 관련 복지관 중 어디에서 문제집을 점역하는지 정보가 없어 점역 여부를 각 복지관 사이트에서 일일이 확인하거나 전화로 문의해야 한다. 이에, 복지관이 점역한 문제집을 찾을 때에는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까지도 걸린다.
김영 매니저는 먼저 시각장애 관련 기관에 일일이 연락, 학습 교재를 점역하는 기관이 특수교육원 및 복지관* 등 7곳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리고 이들이 제작했던 약 1,500건의 교재 정보를 취합했다.
*학습교재 점역 복지관 목록
아쉽지만 점역 파일 다운로드 서비스는 포기했다. 저작권법에 의하면 행복나눔재단은 점자자료를 복제/배포/전송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다. 해당 기관은 장애인 거주시설, 점자도서관, 특수학교 및 특수학급을 둔 학교, 시각장애인 복리 증진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시설 등으로 정해져 있다. 이에, ①어디에 어떤 문제집이 있는지 정보와 ②웹사이트 링크 및 기관 연락처까지로 제공 범위를 정했다.
정보를 모으고 제공 범위를 정할 때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했어요!
김영 매니저 “마음 같아서는 국내 모든 점역자료를 모아 다운로드까지 바로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모든 자료의 정보를 모으는 건 매우 어렵고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원래의 목표인 ‘시각장애 학생의 학습’에만 집중했습니다. 우선은 학습에 직접 관련된 교재들만 먼저 모으고, 학생들의 이용 행태와 필요를 확인하면서 정보의 범위를 넓혀 나가고자 했죠. 역시 사업모델을 빠르게 개발하기 위해 점역 파일 다운로드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Last Mile 개선점 2: 잘 찾을 수 있게 하자
정보의 취합과 더불어 신경 쓴 것은 ‘검색환경’이다. 시각장애 학생들은 조금 더 시각장애에 최적화 된 검색환경을 필요로 한다. 시각장애인은 인터넷을 이용할 때 소리로 텍스트를 듣거나 점자로 정보를 이해한다. 때문에 편리한 이용을 위해서는 사이트 구조가 단순해야 한다. 하지만 점역 문제집을 제공하는 웹사이트 중 일부는 그 구조가 매우 복잡했다. 뿐만 아니라, 자료에 학년, 과목 등 정보가 따로 입력되어 있지 않은 경우, 정보 필터 기능의 사용이 힘들어 비시각장애인 조차도 이용이 쉽지 않았다. 시각장애 학생이 정보를 찾기 위해서는 웹페이지에 노출되는 기나긴 텍스트를 모두 읽거나 들어야 했다.
“기존 웹사이트는 어려웠던 게, 예를 들어 링크에 딱 들어가면 해당하는 웹페이지가 읽히면 좋은데, 원래 기존에 있던 웹페이지도 보이면서 작게 축소되어 있던 게 작게 펼쳐지는 거… 그런 게 불편했던 것 같아서 좀…. 링크를 누르면 맨 밑에 가야 볼 수 있고, 검색을 굳이 또 해야 찾을 수 있어요.”
아울러 시각장애 학생들이 어렵게 점역 문제집이 있는 걸 알게 되더라도 점역 기관 웹사이트 내 검색 오류가 많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실제로 김영 매니저가 일부 웹사이트에서 직접 검색창에 검색어를 입력했을 때에도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일부 점역 기관은 홈페이지에 자료 정보가 없어 전화를 해야할 때도 있었다.
이렇게 모인 정보를 시각장애 학생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필요한 정보로만 구성한 웹사이트를 구현하기로 했다.
Last Mile 개선 과정 - 정보 서식의 일원화 및 전용 웹페이지 개발
김영 매니저가 점역 기관에서 제작한 점역 자료 정보를 취합해보니, 각 기관마다 각기 다른 서식으로 정보를 관리하고 있었다. 취합된 정보를 검색에 제대로 활용하려면 새롭게 통일된 양식으로 정보를 가공해야 했다. 이에, 기관별 각각의 서식으로 표기된 점역 자료의 정보를 모두 그대로 받아 일괄 정리했다.
그 다음으로 김영 매니저는 ‘시각장애인에 최적화한 검색’에 집중한 웹페이지를 기획했다. 처음에는 빠르게 솔루션을 구현하기 위해 구글시트나 노션과 같은 툴을 검토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이 사용하기에는 불편함이 있어 결국 새롭게 페이지를 기획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복잡한 기능이나 아름다운 디자인, 이미지를 최소화했다. 회원가입 등은 추가하지 않고 최소한의 기능을 구현해 누구나 바로 정보 접근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모든 화면은 시각장애인이 주로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보이스 오버* 기능에 맞춰 텍스트 위주로 구성했다. 시각장애 학생들의 인터넷 사용 모습을 참고하여, 가장 이상적인 검색 화면 설계서를 만들었다. 또, 저시력자들을 위해서는 폰트 크기를 크게 적용, 가독성을 높였다. 개발 과정에서 참여그룹 학생들을 비롯한 시각장애인 사용자, 시각장애인용 사이트 개발자 등의 피드백을 받아 수정, 보완을 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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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매니저가 기획한 페이지 구성안 초안
김영 매니저가 기획한 페이지 구성안 초안 (1)
김영 매니저가 기획한 페이지 구성안 초안 (2)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화면을 직접 설계하고자 노력했어요.
김영 매니저 ”웹사이트 기획을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고 개발사와 직접 소통하며 에듀모아를 만들었습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구현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가장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빠른 속도와 낮은 비용으로 일을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직접 사이트를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당사자 분들께 사용 의견을 구하고,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에듀모아’를 오픈하다
2021년 8월 9일 드디어 에듀모아가 오픈됐다. 김영 매니저는 여러 시각장애인 관련 커뮤니티*에 에듀모아 사이트 오픈 소식을 일일이 알리고, 교육부를 통해 관련 교육기관에 공문을 발송했다. 그리고 네이버 검색 광고에도 예산을 사용했다. 인터뷰를 통해, 시각장애 학생들의 학부모님들이 주로 네이버에서 문제집 정보를 찾으시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 관련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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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커뮤니티 홍보 모습
반응은 곧바로 나타났다. 에듀모아가 오픈된 후, 2회 이상 접속한 재사용자는 월 평균 59.9명. 한 학년에 점역 문제집까지 찾아 공부하는 시각장애 학생은 10~20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대입 수학능력 시험을 위해 학습자료를 찾아서 공부하는 시각장애 학생이 중·고등학교 여섯 개 학년에 60~120명이라고 가정해볼 때 그 중 높은 비율의 사람들이 에듀모아를 이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시각장애 학부모들과 학생들에게 ‘점역 문제집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사이트가 있다’는 입소문도 빠르게 퍼졌다.
“검색하는 기능 되게 편한 것 같아요. 바로 찾을 수 있으니까. 또 검색을 굳이 안해도, 학년 선택하고 과목 선택하고 하면 그거에 대한 해당 목록들이 쭉 나오니까 이게 편하네요”
“너무 잘되어 있네요. 한꺼번에 딱 해주니까. 어디에 뭐가 어디있는지 몰랐는데, 이렇게 한 번에 볼 수 있으니 너무 편하고 좋네요.”
“안그래도 오늘도 필요한 자료를 찾다가, 여기저기 들어가서 보고, '아 없는 것 같다, 복지관에 전화 한번 해봐야겠다' 이러고 있었는데, 딱 검색하니까 전에 제가 찾았던 책이 나오네요”
“이렇게 되면 아이 혼자 (에듀에이블 외의) 기관 자료도 찾을 수 있겠네요. 사이트가 이렇게 되어 있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무 좋았고요. 사이트 아니었으면 여기저기 전화해서 물어봐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검색할 수 있으니 좋고요. 검색 결과 보고 복지관에 전화했더니, 기관에 그 자료가 있는지 몰랐다며 보내주더라고요”
뿐만 아니라 관련 기관들의 참여도 이끌어 내고 있다. 한 복지관은 자료가 제작되는대로 해당 자료의 정보를 업데이트 해 자발적으로 에듀모아에 제공하고 있으며, 특수교육원에서 점역 자료를 신청할 때 에듀모아에서 정보를 확인하는 절차가 생겼다. 또한, 특수교육원의 ‘에듀에이블’에는 기존에 없던 ‘타 기관 제작자료’ 게시판도 신설되었다.
에듀모아 업데이트 프로젝트 현황
김영 매니저는 에듀모아를 오픈한 이후에도 시각장애 학생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며 이들이 학습 시 필요한 정보들이 문제집 외에도 많이 있다는 걸 꾸준히 발견하고 있다. 이에, 에듀모아에 이 정보들을 추가로 업데이트 하고 있다.
김영 매니저
young.kim@skhappines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