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소방관 심리상담 문턱 완화 프로젝트_PBR & 1차 (2021.9~2022.10)

목차

PROBLEM|소방관들이 마음의 불을 살피지 못한다

소방관에게는 다양한 스트레스가 있다

소방관은 힘들다. 일반 시민이라면 살면서 한 번 경험할까 말까한 참혹한 사고 현장을 숱하게 목격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한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을 자주 접하기에, PTSD* 유병률이 일반 시민에 비해 10배 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R&D Lab이 소방관을 인터뷰 했을 때, 일상생활에서 갑자기 화재 현장의 냄새가 난다거나 벨소리만 들어도 식은땀이 흐르거나, 분노 조절이 안 되는 등 PTSD와 유사한 증상을 털어놓는 소방관이 있었다.
PTSD*란?
그런데 소방관을 괴롭히는 건 이런 특수한 상황 뿐 만은 아니다. 조직생활, 인간관계, 가정과 같이 누구나 겪을 법한 일상적인 스트레스도 받는다.
“최근 직무가 바뀌었어요. 어쩔 수 없이 이동한 거라, 나에게 맞는지 고민이 많습니다.” -조사 0~5년차
“근무 중에 교통사고가 나 민원이 들어왔어요. 나름 열심히 하려고 한 행동인데, 주변에서 불편한 기색을 내비쳐 스트레스가 컸습니다.” -구급 15~20년차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 저, 배우자, 부모님으로 계속 바뀌고 있어 양육 일관성이 떨어지는 것이 걱정이에요.” -상황실 10년차
“부부 간 문제가 반복되면서 스트레스가 커졌어요. 업무 스트레스가 가정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가정 스트레스가 업무로 이어지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구조 10~15년차
“은퇴를 몇 년 앞두고 보니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진압 30년차
문제는 소방관의 경우, 특수한 사건·사고로 인한 스트레스에 일상적인 스트레스까지 중첩되다 보면 더 쉽게 PTSD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방관은 그 누구보다 평상시 마음건강 관리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출처] 사례를 통해 알아보는 소방관 가족 심리 이야기

심리상담에 대한 문턱

하지만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마음건강 관리법 중 하나인 ‘심리상담’을 이용해본 소방관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소방관들은 일회성 대화나 모임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었고, 마음건강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몰랐다.
“후배들이 고민 상담을 해오면 술 한 잔 하자고 대답할 것 같아요.”
“상담 프로그램 안내 메일이 주기적으로 오는데 참여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주로 운동이나 술로 해결하는 편이고, 최근에는 코로나19로 그마저도 잘 못하는 것 같네요.”
“사망자를 수습하러 출동할 때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면서 급작스럽게 스트레스가 커지는데요. 선배들은 소방관이라면 당연히 견뎌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감당할 지 잘 모르겠어요.”
소방청 내부 상담 프로그램을 비롯해 지자체 무료 상담 제도, 사설 상담 기관 등 소방관이 활용할 수 있는 상담 자원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소방관이 느끼는 허들이었다.
소방청 내부 상담 프로그램
대부분의 소방서에는 ‘찾아가는 상담실*’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이를 잘 활용하는 소방관은 없었다. 한 두 번 이용한 경험은 있어도 꾸준히 이용하지는 않았다.
*찾아가는 상담실 : 소방청에서 제공하는 심리상담 서비스로, 정신건강 전문가가 소방서를 직접 방문해 PTSD, 우울증 등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상담이 필요한 소방관에게 전문 상담을 제공한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상담 내용이 유출되거나 인사고과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많았다. 또한 공공기관 특성상 매년 바뀌는 상담사나 상담 공백기(보통 12월에서 다음해 5월)의 존재도 심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듯했다.
기타 상담 프로그램
소방청 내부 상담 프로그램 이용이 어려우면 지자체 무료 상담 프로그램이나 사설 상담 기관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정보를 아는 소방관은 거의 없었고, 무엇보다 상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다. 상담은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이 받는다는 오해, 시민을 지켜야 하는 소방관이 상담을 받으면 ‘약한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는 걱정 등이 그것이다. 또한 심각한 PTSD를 겪는 동료에 비해 자신의 스트레스는 경미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도 있었다.
여기까지 알아봤을 때, 소방관이 느끼는 허들은 대체로 막연한 부담감이나 거부감 같은 심리적 허들이었다. 실제로 상담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물리적인 허들도 궁금했지만, 상담을 제대로 경험해본 소방관이 없어 인터뷰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직접 소방관들에게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해보며 리서치를 이어가기로 했다.
Project Note 새로운 사회문제를 다루다 보면 기존 자료나 인터뷰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때 R&D Lab은 리서치를 위한 프로젝트를 한다. 문제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라도, 실제로 돌려보면서 문제를 파악해 나가는 것이다.

Last Mile|불편한 예약 시스템이 만든 상담 문턱

상담을 어렵게 하는 물리적 요인들

PBR(Project Based Research) 개요
- 기간 : 2021년 9월 ~ 2022년 5월
- 대상 : 서울·경기 현직 소방관 14명
- 목적 : 다양한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해 보며 물리적 허들 파악
이렇게 물리적 허들을 파악하기 위한 PBR(Project Based Research)이 시작되었다. 총 9개월에 걸쳐 소방관 14분께 상담을 제공하며, 상담 시작부터 마치기까지 겪는 어려움을 구체화하고자 했다.
특히, 리서치인 만큼 최대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전문 심리 상담 센터인 ‘마인드카페’ 그리고 ‘좋은마음센터(동작점)’와 함께 1:1 상담 프로그램, 온라인 그룹 상담, 모바일 육아 상담, 모바일 마음챙김 명상 등을 기획했다.
이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는 아래와 같다.
인사이트1. 소방관은 1:1 상담에 만족했다
총 13명이 1:1 심리상담 6회기를 이수했고, 그 중 8명은 자발적으로 10회기까지 연장했다. 연장하지는 않았으나 6회기 상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소방관도 있었다. 의외로 온라인 그룹 상담, 육아 상담, 마음챙김 명상은 인기가 없었다. 이 결과를 통해 소방관이 상담, 그중에서도 1:1 상담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상담을 받아봤는데 기대한 것보다 더 좋았습니다. 추가로 4회 연장해서 10회로 받아보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내와 상담 받는 게 어색했는데, 상담 선생님이 계시니 덮어둔 부분까지 이야기하게 되더라고요. 그 동안 아내와는 일 얘기를 하기 어려웠는데, 이 계기로 이야기 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꺼내기까지가 어려웠지, 막상 시작해보니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상담에 대해 잘 모르고 마음의 거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인사이트2. 소방관은 상담 시작과 진행이 늦어졌다
의외의 복병은 상담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필요성을 인지하고 상담을 신청한다고 치면, 바로 그 주나 다음주에 첫 상담을 받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소방관이 상담 참여를 결정하고 첫 상담을 받기까지 평균 22일이 걸렸다. 또한 전문 상담 기관에서 권장하는 상담 간격은 최대 2주인데, 소방관은 상담이 끝나고 다음 상담을 받기까지 펴균 18일이 걸렸다. 즉, 상담의 효과를 제대로 느끼기 어려운 상황인 것.
그 원인은 불규칙한 근무 패턴과 불편한 예약 시스템에 있었다. 소방관은 갑작스럽게 출동하거나 주야간 근무를 번갈아 하는 등 근무가 불규칙한 편이다. 근무 스케줄이 3주 간격으로 바뀌기 때문에 한 번 상담을 놓치면 3주 뒤에나 잡을 수 있었다. 상담을 받고 싶어도 안정적으로 받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또한 많은 심리상담 센터가 전화로만 상담 예약이 가능하다. 상담에 필요한 정보를 미리 파악하기 위함이지만, 상담 일정을 자주 바꿔야 하는 소방관에게는 매우 불편한 시스템이었다.

Last Mile : 불규칙한 근무 패턴과 불편한 예약 시스템

결과적으로, 소방관들은 심리상담에 만족했지만 직무 특성상 상담을 시작하고 이어가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다. 상담 만족도가 올라가려면 어느 정도 상담 횟수가 누적되어야 하는데, 소방관은 불규칙한 근무로 인해 상담을 지속하기 어렵다. 이중 근무 체계를 바꾸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상담 예약 시스템을 조금 더 편리하게 바꾸는 건 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소방관의 상담 이용을 어렵게 하는 불편한 예약 시스템을 Last Mile*로 정의하고, 물리적 문턱을 낮추는 것부터 해보기로 했다. 이렇게 소방관에 최적화 된 상담 모델을 찾기 위한 첫 번째 프로젝트가 시작되다.
사회문제의 Last Mile*

PROJECT 1차|소방관 심리상담 모델을 만들어보자

소방관 심리상담 문턱 완화 프로젝트 1차
- 기간 : 2022년 6~10월 - 대상 : 서울에 직장 또는 거주지를 둔 현직 소방공무원 7명 - 목적 : 물리적 허들을 낮춘 심리상담 모델 개발
1차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소방관의 상담 경험을 진입>몰입>종료>추천 단계로 나눠보았다. 그리고 PBR에 참여했던 소방관들이 일단 ‘몰입’ 단계에 들어가면 상담을 꾸준히 이수하는 것을 보고 ‘진입’과 ‘몰입’ 단계를 더 섬세하게 디자인해보기로 했다.
[진입 단계] 상담 예약을 간소화해 첫 상담일 앞당기기
[몰입 단계] 회고 과정을 통해 상담 몰입&지속 지원하기

상담 진입과 몰입을 위한 포인트

첫 상담 예약 쉽게 하기
앞서 PBR에서는 첫 상담을 잡기까지 22일이 걸렸다. 그래서 1차 프로젝트에서는 전화가 아닌 온라인 예약 시스템을 도입해 예약 절차를 간소화하고, 담당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그 기간을 단축시키고자 했다.
먼저, 별도 앱 설치나 회원가입이 필요하지 않는 서비스를 중심으로 알아보았고, 최종적으로 ‘되는 시간(바로가기)’이라는 서비스를 선택해 상담 예약 페이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상담센터와의 컨택과 일정 조율 같은 번거로운 절차는 프로젝트 담당 매니저가 맡았다.
소방관 입장에서는 기존에는 상담센터 운영 시간에 맞춰 전화해야 했다면, 이제는 24시간 언제든 사이트에 접속해 원하는 날자를 클릭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온라인 상담 예약 시스템의 화면
이 과정에서 소방관의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썼다. 상담 접수를 받을 때 최소한의 정보만 확인했고, 상담센터에도 이름/전화번호/상담 유형/희망 시간 정도만 전달했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것 역시 부담감을 낮추는 방법 중 하나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회고를 통해 상담 몰입 지원하기
PBR에서 소방관들은 불규칙한 근무로 상담을 지속하기 어렵거나, 다음 상담이 늦어지면서 몰입이 깨지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근무 체계를 바꿀 수는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상담 간격이 길어지는 상황에서도 몰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1차 프로젝트에 도입한 것이 상담 회고 패키지였다.
패키지는 노트와 펜, 커피 쿠폰, 가이드(질문지)로 구성되었다. 질문지를 보며 본인도 모르게 했던 이야기나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떠올리거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하는 등 상담을 상기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무엇이든 남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
소방관들에게 제공했던 상담 회고 패키지
상담센터에 부탁해 첫 상담이 끝나면 이 상담 회고 패키지를 드리면서, 가까운 카페에서 회고 시간을 갖도록 권유했다. 그리고 이런 회고 활동을 인증하면 커피 선불 카드를 충전해주면서 다음 상담을 하도록 독려했다.
다행히 소방관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는데. 소방관들은 상담 때 느꼈던 기분이나 생각 등을 기록하고 되새기면서 상담에 대한 긍정적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답해 주었다.
소방관들이 상담 회고 활동을 인증하는 모습
Project Note 한 소방관님이 "상담 받을 때 좋았는데, 어디라도 써둘걸..." 말씀하신 게 회고 노트의 힌트가 되었다. 시중에도 마음건강 키트 등이 나와있는데, 불규칙한 근무로 자칫 상담 몰입이 깨지기 쉬운 소방관들에게 특히 좋을 것 같았다. 이렇게 당사자의 이야기와 기존 솔루션을 연결하면 또 다른 좋은 솔루션이 되기도 한다.

최적의 상담 모델에 한 발짝

이렇듯 1차 프로젝트에서는 온라인 예약 시스템과 회고 패키지를 도입해보면서 아래 3가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첫 상담이 빨라졌는지 → 쉽게 진입할 수 있다
상담 간격이 줄어들었는지 → 더 잘 몰입할 수 있다
상담을 끝까지 완료했는지 → 상담이 만족스럽다
먼저, 소방관의 첫 상담 시작 기간이 22일에서 10.4일로 반 이상 단축되었다. 이는 R&D Lab에서 기준으로 잡은 10일에 근접한 수치로, 상담 진입 장벽 낮추기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상담 간격은 18일에서 19일로 오히려 늘어났다. 코로나 등의 물리적 영향도 있었지만, 워낙 변화가 많은 소방관이기에 상담 기간 문제는 큰 과제일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은 2차 프로젝트에서 보완해보기로 했다.
상담 기간과는 별개로, 회고 노트와 상담에 대한 소방관의 만족도는 높았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소방관 7명 중 6명이 6~10회차 상담을 완료했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용할만한 가치가 있고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고 주변 동료들에게 추천했어요.”
”의미있는 시간이었어요. 이후에 힘든 상황에 직면해도 극복해나가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 상담 때 느낀 위안이 증발되기 마련인데, 회고 노트를 쓰니까 나중에도 읽어볼 수 있어서 좋아요”
”나중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이 회고 노트를 먼저 펼쳐볼 것 같아요.” 상담을 완료한 소방관
소방관에 최적화된 상담 모델을 찾는 여정은 막 한 발을 뗐다고 할 수 있다.
1차 프로젝트의 성과를 바탕으로 2차에서는, 심리적 방해 요소를 제거해 심리상담의 문턱을 한층 낮춰보는 시도를 했다. 그 이야기는 아래 리포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2차 프로젝트 리포트 보러가기
소셜섹터의 성장 덕분에 우리 사회는 많은 사회문제 솔루션들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런 솔루션들이 이를 필요로 하는 당사자들에게 활용되기까지는 아직 작은 간극들(Last Mile)이 남아있다. R&D Lab은 이러한 간극을 찾고, 이를 메우는 사업모델을 만든다.
프로젝트 담당 l 유승제 매니저
문의ㅣsj.yoo@skhappines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