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인터넷 강의 접근성 프로젝트
목차
PROBLEM|시각장애 학생은 인강을 100% 활용하지 못한다
비장애인에겐 당연한 학습 수단
[출처] 뉴시스(2020.4.5), 미디어오늘(2022.10.17)
행복나눔재단 R&D Lab은 오랫동안 시각장애인의 학습 문제에 관심을 갖고 깊이 들여다 봐왔다. 특히 문제를 발굴할 때, 비시각장애인이 잘 활용하고 있는 학습 수단이나 콘텐츠를 시각장애인 역시 충분히 누리고 있는지 비교하면서, 둘 사이의 갭에 주목해 문제를 구체화했다.
그런 의미에서 ‘종이 문제집’과 ‘인터넷 강의’는 다뤄볼 가치가 있는 문제였다. 둘 다 비장애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편리한 수단인 데 반해 시각장애인은 활용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강의는 시청각을 이용한 학습 효과, 다양한 과목&강사 선택지, 과외나 학원에 비해 저렴한 비용, 시간 및 장소의 자유로움 등 장점이 많고 학생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학습 수단 중 하나이다. 스스로의 학생 시절을 떠올려봐도, 주변에 인터넷 강의를 듣지 않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인터넷 강의는 기본적으로 정보를 ‘소리’로 전달해주기 때문에, 비시각장애인은 물론 시각장애 학생들 입장에서도 활용하기 좋은 학습 수이다. EBS 강의 중에서는 시각장애 학생을 위해 화면 속 시각 정보를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EBS 화면해설 강의’도 있다.
시각장애 학생에겐 반쪽짜리 강의
그러면 시각장애 학생들은 인터넷 강의를 잘 활용하고 있을까?
행복나눔재단 시각장애 학생 참여그룹*에 물어본 결과, 9명 중 6명이 인터넷 강의를 활용하고 있었다. 언뜻 숫자만 보면 꽤 많은 시각장애 학생이 인터넷 강의를 활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물어보니 6명 모두 EBS 화면해설 강의가 아닌 일반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고 있었고, 화면해설 없이 ‘듣기만’ 하는 수준이었다. 화면 내용을 모르니 강의를 100% 이해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강의에 집중하지 못해 결국엔 인터넷 강의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양한 인강을 들어보고 싶기는 한데, 칠판에 어떤 게 써지는지 화면해설이 있어야... 그거 때문에 인강을 안 보니까…” -시각장애 학생
”인강 너무 듣고 싶은데요, 사실 근데 화면 해설이 안되고, 졸리고, 써 가면서 하기 때문에 듣고 싶은 강의는 많은데 못 들어요.” - 시각장애 학생 학부모
참여그룹은 시각장애 학생들 중에서도 학습 능력과 의지가 높은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이들 다수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래서 문제를 좀 더 파고 들어가 보기로 했다.
Project Note
시각장애 학생들이 인터넷 강의를 활용하기 어려운 이유 중에는 ‘웹사이트의 불편함’도 있다. 사이트 내 이미지 요소를 설명하는 대체 텍스트가 없는 등 웹접근성이 좋지 않아 강의를 찾거나 결제하기 어려운 경우이다. [관련 기사 읽기] 하지만 이는 해당 사이트의 개선이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서는 인터넷 강의 자체에 집중하기로 했다. 대신, 재단에서 만든 시각장애인 학습정보 포털 <에듀모아>에 EBS 화면해설 강의 메뉴를 신설해 학생들이 원하는 강의를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LAST MILE|인강 수강을 도와줄 도구가 없다
화면해설 강의 왜 안 써요?
시각장애 학생은 인터넷 강의 속 시각정보를 얻기 힘들다. 앞서 말한 EBS 화면해설 강의는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대표적인 솔루션이다. 소리에 의존해 강의를 들어야 하는 시각장애 학생을 위해 인터넷 강의 화면에 보이는 텍스트나 도표를 음성으로 설명해준다.
시각장애 학생들은 왜 이런 화면해설 강의를 활용하지 않을까?
① 중요한 시각 정보가 누락되어있다
A 프리젠테이션 지문, 문제 등 미리 준비되어 화면에 띄워주는 텍스트나 도표
B 판서 강사가 칠판에 손으로 적는 글자, 밑줄, 별표 등 필기 요소
C 지시 표현 강사가 행동 또는 지시어를 써서 가리키는 특정 부분
인터넷 강의 속 주요한 시각 정보를 [프리젠테이션], [판서], [지시 표현]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지시 표현은 음성 정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 역시 시각 정보라고 보았다. 인터넷 강의를 듣다보면 강사가 손으로 가리키면서 “여기”라고 말하거나 “밑줄 친 부분”이라고 말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지시 표현은 ‘소리’이지만 볼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하기 때문에 시각 정보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화면해설이 이 모든 시각 정보를 다 포함하는 건 아니다. 주로 화면에 띄우는 프리젠테이션이나 문제 풀이에 꼭 필요한 일부 지시 표현만 설명해준다. 좀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EBS 화면해설 수능 강의 중 하나를 골라 분석해 봤는데, 화면해설이 설명해주는 시각 정보는 전체의 13% 정도에 불과했다.
<화면해설이 제공하는 시각 정보 비율>
프리젠테이션 | 판서 | 지시 표현 | 전체 합계 |
28% | 5% | 13% | 13% |
*설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전체 시각정보 대비 화면해설이 다루는 정보의 비율이다
*하나의 강의만 분석한 것으로, 강의에 따라 비율은 다소 바뀔 수 있다
보통 핵심을 짚어줄 때 별표나 밑줄을 치고 설명하는 패턴을 생각하면, 중요한 정보가 누락되는 셈이다. 시각장애 학생들은 앞뒤 맥락을 바탕으로 유추해서 듣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답답함이나 불안함을 느꼈다.
“강의 들으면서 교수자가 ‘이거’, ‘저거’라고 말할 때가 답답해요.”
“음성으로만 들으면 70% 정도 이해하는 것 같아요. 근데 30%가 뭔지 모르니까 불안해요. 모르고 지나가는 내용이 있을까봐…”
② 음성 정보가 부정확하다
소리로 전달되는 정보를 캐치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었다. 정확한 스펠링을 알 수 없고, 화면해설 음성과 강사의 말이 겹쳐서 오히려 정보 수신과 집중을 방해한다는 의견이다.
“음성으로 제공되는 것은 일일이 다 적어야 하는데, 맞춤법을 알기 어려워요.”
“소리로만 들으면 내용을 놓쳐서 여러 번 들어야 해요.”
③ 재생시간이 길다
강의 재생시간이 길어서 화면해설 강의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 말을 듣고 EBS 화면해설 수능 강의 중 임의로 2개를 골라 분석해 봤는데. 과목이나 강의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나지만, 화면해설이 있는 강의가 일반 강의보다 많게는 30% 정도 더 길었다.
④ 필요한 구간을 선택해서 들을 수 없다
보통 인터넷 강의에는 ‘오프닝’, ‘문제1’ 식으로 진도를 구분해주는 타임스탬프가 있는데, 화면해설 강의에는 없다. 그래서 시각장애 학생들은 화면해설이 필요한 부분만 선택해서 들을 수 없고, 특정 구간을 다시 듣기 위해서는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놓친 부분, 듣고 싶은 부분만 다시 듣고 골라 듣기가 어려워서 강의를 재생하는데 시간이 몇 배로 걸려요.”
⑤ 강의 선택 폭이 좁다
모든 EBS 강의가 화면해설 강의로 제작되는 건 아니다. 고교 강의를 기준으로 보면, 평균적으로 연간 6개 강좌(약 277강) 정도만 화면해설 서비스가 제공된다. 수능 과목이 30개가 넘는 것을 생각하면, 시각장애 학생 입장에서는 다양한 과목을 선택할 수도, 과목 별로 다양한 강의를 선택할 수도 없는 것이다.
“원하는 강의를 듣는 게 더 중요해서 (EBS 화면해설 강의가 아닌) 일반 인강을 그냥 들어요.”
이런 이유로 인해 시각장애 학생들은 화면해설 없이 EBS 강의를 수강하거나, ‘화면해설을 안 쓸 바에는 듣고 싶은 강의를 듣자’해서 EBS이 아닌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는 쪽을 택했다. 간혹 유튜브로 동영상을 찾아 활용하는 학생도 있지만, 이는 필요한 내용만 잠깐 검색하는 정도라 인터넷 강의를 활용한 학습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Last Mile : 인터넷 강의 수강을 도와줄 보조도구가 없다
시각 및 청각 정보로 구성되어 있는 인터넷 강의는 시각장애 학생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학습 수단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들이 인터넷 강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 정보를 해설해줄 필요가 있지만, 기존의 대표적인 솔루션인 EBS 화면해설 강의 조차도 누락되는 정보가 많고 불편해 잘 활용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찾은 여러 이유 중 ④, ⑤번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고, 다른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효과를 보기 때문에 시급성 면에서도 밀린다고 생각했다. 그 대신 화면해설 강의에 시각 정보가 충분하지 않고(①번) 음성 정보 자체가 한계를 갖고 있는 점(②, ③번)에 더 주목했다.
그래서 인터넷 강의의 시각 정보를 정확하면서도 편리하게 전달해주는 보조도구가 없는 것을 Last Mile로 규정하고 솔루션을 찾아보기로 했다.
사회문제의 Last Mile*
특히, 인터넷 강의는 ‘가성비’ 관점에서 좋은 사회문제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종이 문제집을 점자 문제집으로 다시 제작하는 경우, 전문 점역사가 점자로 번역하고 교열·교정하고 특수 인쇄를 하는 등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그에 반해, 시각과 청각 요소로 구성된 인터넷 강의는 오디오를 거의 손댈 필요가 없고 화면 내용만 보조해주면 비장애인과 거의 유사한 학습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뾰족한 솔루션을 찾으면 많은 인터넷 강의에 적용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영역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SOLUTION|강의 내용을 텍스트로 제공해보자
음성이 아닌 텍스트
인터넷 강의 속 시각 정보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해보았다. 특히, 전달이 부정확하고 사운드가 중복되는 등 음성 해설이 가진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솔루션이 텍스트 해설이었다.
우리가 꼽아본 텍스트 해설의 장점은 다음과 같았는데, 음성 정보의 단점을 보완하기에 충분했다.
강의 청취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강의를 들으면서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
스펠링 등을 정확하게 알 수 있고, 따로 받아 적지 않아도 된다
필요시 다시 찾아 읽기가 용이하다
프로젝트 실현가능성 면에서도, 묵자(눈으로 읽는 문자)를 점자 파일로 변환하는 과정은 비교적 쉽고 저렴하기 때문에 해 볼만 했다. 또한 ‘한소네’에 파일을 넣으면 바로 읽을 수 있으므로, 널리 활용할 수 있는 솔루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소네 : 시각장애 학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휴대용 점자 단말기로, 점자 셀이 올라와 촉지로 읽을 수 있다.
텍스트 해설 제작 포인트
텍스트 해설 솔루션은 텍스트라는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는 것 외에도, 내용 면에서도 기존에 누락된 정보+@를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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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시각 정보 제공
기존 화면해설에서는 [프리젠테이션]과 일부 중요한 [지시 표현]만 설명해주기 때문에 시각장애 학생들이 강의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텍스트 해설은 가능한 모든 [프리젠테이션], [판서], [지시 표현] 시각정보를 빠짐 없이 설명하고자 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프리젠테이션 33:48
밑줄 친 countersignal이 다음 글에서 의미하는 바로 가장 적절한 것은?
{6} In one study, ˇ she asked <the shop assistants ˇ worki{ng} in high-end designer stores> ˇ {to}{△} rate two shoppers, …
*지시 33:56
이 목적어한테 : <the ~ stores>
*프리젠테이션 34:35
… 〈one in gym clothes {and}{△} the other in a dress and fur.〉
*판서 34:35
운동복 vs 고급의상
*이 이미지는 인터넷 강의 중 장면을 가져와 보기 쉽게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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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의 시각적 특징 요약
강사나 과목에 따라 설명하는 방식이나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시각장애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강의 시작 전에 어떤 정보가 포함되어 있는지 간단히 브리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설 양과 난이도, 강의 구성과 자주 쓰이는 시각적 요소, 그 밖에 참고하면 좋을 유의사항을 포함해 ‘강의의 시각적 특징 요약’을 대체자료 앞 부분에 넣기로 했다.
<예문> 강사가 강의 내용을 PPT로 띄우고 구두로 설명을 많이 하는 강의입니다. 자료 한 장당 글자 수가 많지 않은 편이지만 설명하는 과정에서 필기와 지시어가 연속적으로 나오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본 강의는 오늘 꼭 알아야 하는 개념으로 시작해 STEP 3. 개념 Jump에서 제시문을 읽고 기출문제 하나를 푼 다음 숙제인 ‘제가 압니다!’로 끝납니다. 5개의 문단을 읽고 해설한 다음 각 선지를 분석하는데 한 문장을 짧게 끊으며 설명하고 필기 및 지시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러한 흐름에 따라 강의를 이해하시면 자료의 구분이 더 쉬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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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타임스탬프 표기
시각장애 학생들은 화면해설 강의에 타임스탬프가 없어 필요한 구간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을 불편해 했다. 특히나 텍스트 대체자료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자료가 필요한 강의 재생 시점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서 강의와의 싱크로를 맞추기 위해 대체자료에 타임스탬프를 표기하기로 했다.
Project Note
’강의의 시각적 특징 요약’은 EBS 화면해설을 제작하는 시각장애 교사를 인터뷰하면서 얻은 아이디어이다. 이런 자료가 있으면 학생들이 강의 전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말씀을 듣고, 나만의 원칙을 세워 시각적 특징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문제를 정의하거나 솔루션을 찾을 때, 문헌조사와 당사자 인터뷰&관찰, 관계자 인터뷰 등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PROJECT|대체자료 제작·제공 최적화하기
대체자료 제작(20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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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체자료를 만들지 정하기
EBS 수능강의의 영어 과목 대체자료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EBS 수능강의는 인터넷 강의를 듣고 싶은 시각장애 학생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강의이고,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과목을 선정할 때 고려한 건 ‘솔루션 모델을 빠르게 만들어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가?’였다. 이 기준으로 아래와 같이 몇몇 과목을 탐색해본 결과, 영어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국어 : 제작은 쉬우나 그냥 듣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음
>수학 : 특수 기호나 도표 등 점자 변환이 어려움
>사회 : 다양한 선택 과목이 있어서 하나에 집중하기 어려움
>영어 : 문장 해설이 많고 스펠링을 몰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음 → 대체자료를 제공했을 때 학습에 효과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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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자료 직접 제작해보기
대체자료가 솔루션으로서 안착하고 쓰이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는 ‘대체자료 제작 매뉴얼’이 필요하고, 이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체자료를 직접 만들어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EBS 수능 영어 강좌 하나를 골라 대체자료를 제작해보았다.
강의를 보면서 시각 정보를 나름의 기준으로 정리해보고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구했다. 좋은 피드백을 받은 점은 규칙으로 정하고, 불편하다고 한 점은 다음 대체자료를 만들 때 수정해서 반영했다. 시각장애 학생들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서로 상반된 의견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럴 때는 ‘교재보다 인터넷 강의를 중심으로 학습하는 학생’의 의견을 우선시했다.
대체자료 제작 → 학생 피드백 → 수정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어떤 시각 정보가 있는지 유형을 파악한 후에는, 이를 어떻게 이해하기 편하게 표현할지 세부 규칙을 만들었다. 세부 규칙을 만들 때도 역시 시각장애 학생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나아가 사용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학생들이 굳이 말하지 않는 사소한 방해요인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시각장애 학생들이 한소네로 대체자료를 읽으며 인터넷 강의를 듣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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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자료 제작 매뉴얼 만들기
더 효과적인 표현 방식이 있는지 시각장애 교육매체를 다루어본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기도 했다. 이때 얻은 시각장애교수학습적인 관점을 반영하여 <시각장애 인터넷 강의 대체자료 제작 매뉴얼>을 만들었다.
매뉴얼을 만들 때 중요하게 여긴 포인트는 되도록 ‘익숙한 기호’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인터넷 강의를 보면 강사 개인의 스타일에 따라 다양한 기호를 사용하는데, 이걸 대체자료에 옮겨 쓸 때는 학교에서 자주 쓰이는 기호를 일관되게 사용하도록 했다. 또한 이게 원래 쓰여있던 지문(프리젠테이션)인지 강사의 필기인지 자칫 헷갈릴 수 있기 때문에, 각기 다른 기호를 사용해서 이 둘을 구분하게끔 안내 했다.
매뉴얼 예시
매뉴얼 예시
매뉴얼을 완성한 후에는 프리랜서를 구해 대체자료 제작을 맡겼다. 프리랜서는 강의를 재생하면서 주어진 양식에 맞게 기본&강사 해설 → 판서&지시 순서 대로 내용을 타이핑한다. 그리고 타이핑 작업 전이나 마지막에 타임스탬프도 기입한다. 이후 점자 번역, 검수 및 수정 과정을 거쳐 시각장애 학생에게 전달된다. 많을 때는 5명의 프리랜서가 함께 작업했는데, 혼자 작업 할 때와 비교해 더 많은 대체자료를 만들 수 있었다.
한편, 이는 많이 만드는 거 외에도 매뉴얼이 일관된 결과물을 내는 데 있어 제대로 역할을 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작업을 맡기는 데 그치지 않고 프리랜서 분들의 피드백을 받아 새로운 대체자료 유형을 만들거나 세부 규칙을 추가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Project Note
우리는 문제를 당사자만큼 알 수는 없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할 것이다. 나 역시 눈 감고 인터넷 강의를 들어보며 당사자와 비슷한 경험을 해보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가장 도움이 되었던 건, 당사자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듣는 법’을 고민한 것이었다.
학생들이 하는 피드백만 듣는 게 아니라, 왜 그런 피드백을 했는지 ‘맥락’을 이해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평소에 어떤 식으로 영상 콘텐츠를 이용하는지, 공부할 때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각장애인의 학습환경이나 학습방식을 넓게 이해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대체자료 알람 프로그램 개발(2023. 8~)
대체자료와 더불어 확장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시각장애 학생들이 대체자료를 사용하는 모습을 관찰하던 중 엉뚱한 부분을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 계기였다. 강의 재생시간과 대체자료 타임스탬프를 비교해보니 강의 진도보다 한참 앞의 자료를 읽고 있었는데. 학생들은 놓쳤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설령 알았다고 한들 해당 타이밍으로 이동하기도 어렵다. 강의와 대체자료의 싱크로를 좀 더 쉽게 맞출 수 있는 보조수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낸 솔루션은 대체자료 알람 프로그램이었다. 강의를 듣다 보면 대체자료가 있는 구간에서 [해설], [지시], [필기]와 같은 소리가 나와, 시각장애 학생이 알람에 맞춰 대체자료를 차례대로 읽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앞서 이 방법이 효과적인지 테스트해봤다. 시각장애 학생들이 대체자료를 읽을 때 수동으로 알람 소리를 들려준 것인데. 학생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알람이 없을 때와 비교해 타이밍을 놓치지 않게 되었고, 놓쳐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강의 시간을 좀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식도 제안해보았으나, 어쨌든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제스처를 취해야했기 때문에 학생들은 소리로 알려주는 방식을 선호했다.
프로그램의 효과와 필요성을 확인한 뒤, 그 다음으로 구현 방법을 고민했다. 대표적으로는 ①새로운 플레이어 개발이나 ②EBS 플레이어 기능 수정이 있었는데, 둘 다 개발 규모가 크고 여러 이해관계자가 관여해 큰 비용과 시간이 들 것 같았다. 그래서 결론은 웹브라우저의 익스텐션 기능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작은 규모의 개발이라 개발자를 찾는 데 애를 먹긴 했지만,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개발&테스트할 수 있고, 만약의 경우 실패(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약 두 달에 걸쳐 프리랜서 개발자와 확장 프로그램 MVP를 개발했다. 프로그램은 ●특정 시점에 알람이 울리고 ●그 시점을 관리자가 지정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기능만 탑재했다. 또한 대상이 되는 웹브라우저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크롬’ 버전만 우선 개발했다.
확장 프로그램 순서도
확장 프로그램 개념도
개발한 프로그램을 학생들이 써보게 했다. 학생들은 정확한 타이밍에 대체자료를 읽었고,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전에는 넘어간 건지 아닌지 확인하면서 봤어야 했는데, 알림은 딱 나오면 넘어가고 이렇게 하니까 훨씬 알기 편한 것 같아요.”
”놓쳤더라도 해설 부분 나왔구나, 하고 다음 대체 자료로 넘어갈 수 있어요.”
”해설, 지시, 필기 알람 소리가 달라서 자료 유형 구분하기가 편해요. 이 알람소리 때문에 대체자료를 쓰는 것도 있어요.”
”이제 대체자료 없이 들으면 허전하고 ‘뭔 소리야’ 하게 돼요.”
시각장애 학생이 대체자료와 알람 프로그램을 활용해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는 모습
이렇게 솔루션의 효과를 확인한 후 12월부터는 대체자료와 확장 프로그램을 병행해 사용해오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최소 기능에만 집중한 MVP이기 때문에, 추후 기능 업데이트를 이어가고자 한다.
Project Note
최소 기능 제품을 뜻하는 MVP(Minimum Viable Product)는 사회문제 해결에도 중요한 개념이다. 대개 사회문제는 복잡하고 단번에 딱 맞는 솔루션을 만드는 게 어려울 수 있다. 이럴 때 MVP는 우리 솔루션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지 빠르게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다.
여기서는 최소 기능을 ●특정 시점에 알람이 울리고 ●그 시점을 관리자가 지정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있으면 좋은 기능이야 많지만, 최소 기능에서 시작해 기능을 하나씩 덧붙여 나가면 사용자 테스트까지 걸리는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우리 솔루션의 타깃 찾아가기
솔루션이 가장 효과를 보이는 적절한 타깃을 찾는 것도 프로젝트에서 중요하다. 이 프로젝트에서도 솔루션 개발과 테스트를 거듭하면서 타깃을 세분화했다.
초기 타깃 : 학습 의지가 있는 예비 고3
초기 타깃은 예비 고3이었다. 인터넷 강의를 가장 필요로 하는 학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여그룹 중 희망하는 학생 2명에게 인터넷 강의 대체자료를 제공해보았다.
결과적으로 두 학생 모두 인터넷 강의를 잘 활용하지 않았다. 한 학생은 수시를 위해 내신공부에 집중하다보니 수능 강의를 잘 활용하지 않았다. 또 다른 학생은 모바일 앱을 사용해 이동 중에 귀로 듣던 습관이 있어 PC와 대체자료로 학습하는 걸 어려워했다.
대입 전략과 익숙한 공부 방법이 이미 정해진 고3에게 우리 솔루션이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타깃을 수정했다.
수정 타깃 : PC 인터넷 강의를 써 본 적이 있는 예비 고1
수정한 타깃은 이제 막 고등학교 올라가는 예비 고1이었다. 아직 탐색 과정에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때이고, 수능 입문용 강의는 기본 개념이 잘 정리되어 있어 수능 뿐만 아니라 내신공부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행복나눔재단 세상파일팀 <시각장애 학습 자료 제공 프로젝트>에서 점역 문제집을 받아보는 학생 중 2명을 추천 받아 대체자료를 제공해보았다. 특히 PC로 인터넷 강의를 학습해본 경험이 있는 학생들로 구성했는데. 모바일로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은 귀로만 듣는 데 익숙했고, 온라인 강의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PC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RESULT|인터넷 강의를 꾸준히 수강하다
인터넷 강의 사용 증가
타깃으로 잡은 고등학교 1학년 시각장애 학생 2명에게 인터넷 강의 대체자료와 확장 프로그램을 제공해보았다.
두 학생 모두 솔루션을 사용하기 전에는, 충분하지 않은 정보로 인해 인터넷 강의 사용을 불편해 했다. 이 불편한 점을 가족이 보완해주고 있었으나, 그 과정이 번거롭고 정확성에 한계가 있다 보니 인터넷 강의를 점점 멀리하게 된 상황이었다.
그랬던 두 학생은 현재 인터넷 강의를 8개월째 꾸준히 수강 해오고 있다. 때에 따라 수강 주기는 조금씩 달라지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속 사용하고 있다.
학생들은 대체자료와 확장 프로그램 기능에 만족했고, 인터넷 강의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흥미가 크게 향상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는 대체자료 없이 강의를 들으면 5% 부족한 느낌이 들어요. 선생님 필기에 중요한 내용이나 부연 설명이 다 있다보니까 필기 부분을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대체자료를 사용하면 요점이 깔끔하게 정리되고 복습하는 느낌이 들어요.” - 학생1
“강의의 시각적 특징을 요약해주니까 전체 흐름을 예상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검색해서 자료를 실시간으로 찾아볼 수도 있고 타임스템프가 있어서 해당 위치로 넘어가기도 편해요. 그리고 살면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필기하는지 처음 안 건데, 쌤(강사) 필기 스타일을 참고해서 다른 과목에도 써먹고 있어요.” - 학생2
학생들 스스로가 느끼는 강의 이해도도 높아졌다. 학생들은 대체자료를 활용함으로써 강의 내용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답했는데. 이는 객관적인 수치보다는 학업에 있어서 ‘자기 효능감’이 높아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자기효능감’은 주어진 과제를 수행해 낼 수 있다는 주관적인 확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학생들이 대체자료를 찾아보고 반복해 읽으며 몰랐던 부분을 이해하게 되고, 이런 경험이 쌓여 학업에 대한 자신감이나 동기부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덧붙여 음성 화면해설 강의의 경우에 일반 강의보다 재생 시간이 길어지는 문제가 있었는데, 대체자료를 활용하면 오히려 시간이 단축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줄어들고, 이로 인해 어떤 긍정적 효과가 있는지 추후에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계획이다.
최적화로 가는 여정
시각장애 학생들이 인터넷 강의를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이다. 이를 위해 대체자료+알람 프로그램 솔루션을 개발해 방해요인을 제거하고, 매뉴얼을 제작해 대체자료 제작 프로세스를 체계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앞으로는 테스트 범위를 차츰 넓혀갈 계획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시각장애 학생 2명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제는 더 많은 학생들에게 솔루션을 사용하게 해보고, 대체자료 솔루션이 시각장애인에게 적합한지 검증해보고자 한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시각장애 학생들이 인터넷 강의를 선택 가능한 학습 매체로 인지하고 대체자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도록, 대체자료 제작 기간과 비용을 줄여 최적화하는 방안을 찾아갈 계획이다.
그 과정과 결과는 향후 이 리포트에 업데이트 할 예정이다.
이하늘 매니저
skylee@skhappiness.org